법인 전환, 세무사를 만나고 안 하기로 했다
매출이 한 구간을 넘자 주변에서 법인 전환을 권했다. 나는 세무사를 만나고 나서 올해는 전환하지 않기로 했다 — 상담에서 들은 것과 개인사업자 vs 법인 득실을 솔직하게 적은 회고.
매출이 한 구간을 넘자, 주변에서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말을 했다. "이제 법인 전환해야지."
처음엔 나도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. 법인이라는 단어엔 다음 단계로 올라선다는 어감이 있었으니까. 명함에 "대표이사"가 박히고, 세금이 줄고, 거래처가 나를 더 진지하게 본다 — 그런 그림이 머릿속에 자동으로 그려졌다. 그래서 세무사를 만났다. 그리고 상담이 끝났을 때, 나는 올해는 전환하지 않기로 했다.
이 글은 그 안 하기로 한 결정에 대한 기록이다. 결론부터 말하면 법인 전환은 틀린 선택이 아니라 지금의 나에겐 이른 선택이었다.
미리 적어두면 — 세무는 개인 상황마다 다르다. 이건 내 한 사람의 경험 공유일 뿐이고, 실제 판단은 반드시 세무 전문가와 직접 상담하길 권한다. 같은 매출이라도 가족 구성·지출 구조·향후 계획에 따라 답이 정반대로 갈린다.
전환을 고민한 시점 — 매출이 한 구간을 넘었을 때
작년까지만 해도 법인은 남의 이야기였다. 블로그·앱·자동화에서 들어오는 수익은 용돈 수준이었고, 개인사업자 종합소득세 신고 한 번이면 끝나는 규모였다. 첫 달 수익이 어땠는지는 AIGrit 1주차 중간 리포트(0원·비용 59,000원)에 솔직하게 적어둔 그대로다 — 시작은 마이너스였다.
그런데 올해 들어 한 구간을 넘었다. 본업 외 수익이 월 단위로 일정하게 잡히기 시작하면서, 종합소득세 예상액이 체감되는 숫자가 됐다. 누진세율 구조상 본업 소득에 부업 소득이 얹히면서 한계세율 구간이 올라간 게 컸다. 이 시점에 주변의 "법인 전환해" 합창이 시작됐고, 나도 진지하게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.
고민의 출발점은 단순했다. 법인세율이 개인 소득세율보다 낮다. 이 한 문장이 전환을 권하는 모든 조언의 뿌리였다.
세무사 상담에서 들은 것
세무사를 만나 한 시간 정도 이야기했다. 내가 기대한 건 "당장 전환하세요"였는데, 돌아온 답은 의외로 신중하라는 쪽이었다.
핵심은 세 가지였다.
- "세율만 보면 함정에 빠진다." 법인세율이 낮은 건 맞지만, 법인 통장의 돈은 내 돈이 아니다. 그 돈을 내 개인 계좌로 가져오려면 급여나 배당으로 빼야 하고, 거기서 또 소득세가 붙는다. 결국 법인세 + 개인세를 합쳐서 봐야 한다는 거였다.
- "유지비가 생각보다 든다." 법인은 기장 의무가 무겁다. 세무 기장 수수료, 법인 결산, 4대보험 — 개인사업자일 때 거의 들지 않던 고정비가 매달 나간다. 매출이 충분히 크지 않으면 이 유지비가 세금 절감액을 잡아먹는다.
- "전환의 진짜 이유가 절세인지, 다른 건지 정하라." 세무사가 마지막에 한 말이 오래 남았다. 법인은 절세 도구이기 전에 그릇이라고. 투자를 받거나, 직원을 뽑거나, 사업을 키울 구조가 필요할 때 의미가 생긴다. 지금 당장 절세 효과만 노린다면 매출이 더 커진 뒤가 낫다는 거였다.

개인사업자 vs 법인 — 내가 정리한 득실
상담 내용을 집에 와서 표 하나로 정리했다. 일반론 수준이고 숫자는 내 상황 기준의 대략값이라, 그대로 믿지 말고 방향만 참고하면 좋겠다.
| 항목 | 개인사업자 | 법인 |
|---|---|---|
| 세율 구조 | 종합소득세 누진 (소득 클수록 ↑) | 법인세 (구간별, 개인보다 대체로 낮음) |
| 소득 인출 | 사업소득 = 바로 내 돈 | 급여·배당으로 빼야 함 → 추가 소득세 |
| 4대보험 | 지역가입자 (소득 기준) | 대표자도 직장가입 의무 → 고정 부담 |
| 유지·관리비 | 간단 (간편장부·기장 최소) | 기장·결산 수수료, 법인 유지비 매월 |
| 대외 신뢰도 | 개인 명의 | 법인 명의 — 거래·계약에 유리 |
| 적합 시점 | 1인·소규모·인출 위주 | 재투자·확장·외부 자금 단계 |
이 표를 만들고 나서야 나는 어느 칸에 있는가가 보였다. 나는 번 돈을 거의 다 개인 생활비로 인출하는 1인 빌더다. 재투자할 사업도, 뽑을 직원도 아직 없다. 그릇보다 그 안에 담을 것이 먼저인 단계였다.
내 결정과 이유
그래서 올해는 개인사업자를 유지한다. 이유는 세 가지로 정리됐다.
첫째, 인출 구조 때문이다. 법인으로 절세한 돈을 어차피 급여로 빼서 생활비로 쓸 거라면, 절감 효과가 유지비에 상쇄된다. 내 매출 구간에선 순이득이 거의 안 남는다는 계산이 나왔다.
둘째, 시간 때문이다. 나는 주 13시간으로 모든 걸 굴린다. 법인 기장·결산·각종 신고는 그 13시간을 갉아먹는 행정 비용이다. 1인 빌더를 택한 이유 자체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작은 시계 하나를 갖기 위해서였는데, 행정에 시간을 더 뺏기면 본말이 전도된다.
셋째, 시점 때문이다. 법인은 되돌리기 번거로운 결정이다. 한번 세우면 폐업 절차도 비용도 만만치 않다. 매출이 지금보다 확실히 한 단계 더 올라가고, 재투자할 곳이 생겼을 때 전환해도 늦지 않다는 게 세무사의 조언이자 내 결론이었다.
법인 전환은 언젠가의 카드로 남겨뒀다. 지금 안 한다가 영원히 안 한다는 뜻은 아니다.
같은 고민을 하는 빌더를 위한 체크리스트
나처럼 "법인 전환해야 하나" 사이에서 흔들리는 1인 빌더라면, 이 질문들에 먼저 답해보길 권한다. 내가 상담 전에 정리했더라면 한 시간을 더 알차게 썼을 것들이다.
- 번 돈을 재투자하는가, 생활비로 인출하는가? 인출 위주면 법인의 절세 효과는 작아진다.
- 연 단위 세금 절감액 > 법인 유지비인가? 기장·결산·4대보험 고정비를 빼고도 남는지 계산한다.
- 법인이 필요한 구조가 있는가? 투자 유치, 직원 채용, B2B 계약 — 절세 외의 이유가 있으면 무게가 달라진다.
- 행정 시간을 감당할 수 있는가? 1인 운영이면 그 시간이 제품·콘텐츠에서 빠진다.
- 세무사와 내 숫자로 상담했는가? 일반론·블로그 글(이 글 포함)이 아니라, 내 실제 매출·지출로 시뮬레이션해야 한다. 신고와 납부 흐름은 국세청 홈택스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다.
이 다섯 개에 *전부 '예'*가 나오면 전환을 진지하게, *하나라도 '아니오'*면 한 번 더 미뤄도 된다는 게 내 기준이 됐다.
다음 계획
올해는 개인사업자로 가되, 전환 임계점을 미리 정해뒀다. 본업 외 수익이 지금의 명확한 배수를 넘고 재투자 항목이 생기는 순간 다시 세무사를 찾을 생각이다. 그때는 "전환할까요"가 아니라 "이 구조로 전환합니다"라고 묻고 싶다.
그리고 그 임계점까지 가는 동안의 진짜 숫자는 따로 기록할 계획이다. 매출·지출·순이익을 묶은 중간 결산은 Sprint 5주 결산에 일부 적었고, 이 결정이 옳았는지 틀렸는지는 숫자가 더 쌓이면 다시 검증하려 한다.
법인이라는 단어에 주눅 들 필요는 없었다. 그건 더 큰 그릇일 뿐, 지금 내 손에 담긴 것을 먼저 키우는 게 순서였다. 같은 합창을 듣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— 세무사를 만나기 전에 위 다섯 질문부터 적어보길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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