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SaaS 아이디어 선택 프레임워크 — 내가 버린 10개

노트앱에 적힌 SaaS 아이디어 11개 중 10개를 버리고 1개만 만들었다. 시장·내 능력·유지비·수익 경로·지속 동기 5개 필터와, 버린 10개의 탈락 사유·공통 패턴을 솔직하게 적은 회고.

읽는 시간 11

내 노트앱 "SaaS 아이디어" 페이지엔 11개가 있었다. 그중 10개를 버렸고, 1개만 만들었다.

이 글은 어떤 아이디어가 좋은가에 대한 글이 아니다. 좋은 아이디어를 고르는 법은 모른다. 다만 내가 만들면 안 되는 아이디어는 1년의 실패로 어느 정도 알게 됐다. 6개 프로젝트를 묻으며 배운 5가지가 그 학습의 절반이라면, 나머지 절반은 애초에 시작도 안 한 10개에 있다.

버린 것에서 배운 게 더 많았다. 그래서 오늘은 내가 안 만든 10개를 꺼낸다.

내가 쓰는 필터 5개

새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노트에 적은 뒤, 다음 5개 질문을 순서대로 통과시킨다. 하나라도 막히면 그 줄을 지운다. 처음엔 점수표를 만들었는데, 점수는 내가 만들고 싶은 것에 후하게 줘버려서 곧 버렸다. 지금은 그냥 통과/탈락의 이진 필터다.

  • 필터 1 — 시장이 이미 돈을 쓰고 있는가. "있으면 좋겠다"가 아니라 지금 누군가 비슷한 문제에 유료 결제를 하고 있는가. 경쟁자가 0이면 시장이 없다는 신호일 때가 많다.
  • 필터 2 — 내 능력으로 6개월 안에 출시 가능한가. 새 언어·새 인프라를 배워야 만들 수 있으면 탈락. 6개 실패의 70%가 인프라 재구축에 사라졌던 걸 기억한다.
  • 필터 3 — 유지비가 매출 전에 나를 잡아먹지 않는가. 서버·API·외부 결제 수수료가 매달 고정으로 나가는데 수익은 나중에 오는 구조는, 1인 빌더에겐 조용한 출혈이다.
  • 필터 4 — 수익 경로가 한 문장으로 그려지는가. "누가 / 왜 / 얼마를" 한 문장에 안 들어오면 탈락. 광고·제휴·구독 중 무엇으로 버는지 모르면 취미다.
  • 필터 5 — 매출 0인 6개월을 그래도 만들 만큼 끌리는가. 돈이 안 와도 그 자체로 내가 매주 켜고 싶은가. 지속 동기 없이는 검증 전에 내가 먼저 꺼진다.

순서가 중요하다. 1·2·3은 현실 필터고, 4·5는 나 자신 필터다. 현실을 먼저 통과시킨 뒤 마지막에 내 마음을 묻는다. 순서를 바꾸면 하고 싶은 것이 현실 점검을 흐린다 — 그게 지난 1년의 실수였다.

SaaS 아이디어 5개 필터 — 시장·내 능력·유지비·수익 경로·지속 동기를 순서대로 통과시키는 깔때기, 11개 중 1개만 남는다

버린 10개와 탈락 사유

노트에서 그대로 옮긴 10개다. 이름은 적던 가칭 그대로다. 어느 필터에서 막혔는지를 함께 적었다.

#아이디어막힌 필터탈락 사유
1한국어 뉴스레터 분석 SaaS1 시장유료로 쓸 사람을 한 명도 못 떠올렸다
2개발자용 SNS 자동 발행 툴1 시장이미 강자 다수, 내 차별점이 없었다
3AI 회의록 요약 웹앱1 시장거대 기업이 기본 기능으로 흡수 중
4실시간 협업 화이트보드2 능력WebRTC·동기화를 처음부터 배워야 했다
5셀프호스팅 이메일 마케팅3 유지비발송 인프라·도달률 관리가 상시 출혈
6이미지 일괄 변환 SaaS3 유지비GPU 비용이 매출보다 먼저 나갔다
7프리랜서 견적·계약 자동화4 수익누가 얼마 내는지 한 문장이 안 나왔다
8독서 모임 관리 플랫폼4 수익무료로 쓰는 게 자연스러운 시장
9가계부 + 구독 추적 앱5 동기만들다 내가 먼저 지칠 그림이 보였다
10개발자 포트폴리오 빌더5 동기출시 후 내가 안 켤 것 같았다

표를 다시 보면 막힌 필터가 고르게 분포돼 있다. 시장에서 셋, 능력에서 하나, 유지비에서 둘, 수익에서 둘, 동기에서 둘. 5개 필터가 서로 다른 종류의 죽음을 잡아낸다는 뜻이라, 그래서 5개를 다 둔다.

특히 5번·6번은 만들고 싶었던 것들이라 아팠다. 기술적으로 재밌었고 데모도 그려졌다. 그런데 유지비 필터 앞에서 멈췄다. Stripe 수수료와 GPU 청구서를 캘린더에 가짜로 적어보니, 매출 0인 달에 통장에서 나가는 숫자가 선명했다. 그 숫자가 6개월치 쌓인 걸 보고 줄을 지웠다.

통과한 1개 — 그리고 왜

11번째 줄이 지금의 GentleLab 계열, 에너지 기반 태스크 앱이었다. 왜 1인 빌더를 택했나에 적은 식탁 위의 그 자세에서 나온 아이디어다. 5개 필터를 이렇게 통과했다.

  • 시장 — 태스크 관리는 이미 사람들이 돈을 쓰는 거대 시장이다. 경쟁이 무섭지만, 비어 있다는 신호보다 낫다.
  • 내 능력 — Flutter 한 스택으로 6개월 안에 출시 가능했다. 새로 배울 인프라가 없었다.
  • 유지비 — 로컬 우선 앱이라 서버·API 고정비가 거의 0이다. 매출 0인 달에 출혈이 없다.
  • 수익 경로 — "에너지 관리가 필요한 직장인이, 결정 피로를 줄이려고, 구독으로" — 한 문장에 들어왔다.
  • 지속 동기내가 매일 쓰는 앱이다. 매출이 안 와도 켤 이유가 있었다.

다섯 개 중 가장 결정적이었던 건 유지비지속 동기였다. 앞의 6개 시체는 대부분 유지비가 출혈이거나 내가 안 쓰는 것이었으니까. 통과한 1개는 정확히 그 반대였다.

여전히 시장이 무섭다는 건 안 풀렸다. 거대 경쟁자 사이에서 내 자리가 있을지는 아직 모른다. 그래도 나를 죽이지 않는 구조라는 점에서, 만들어볼 자격이 있다고 판단했다.

버린 10개의 공통 패턴

10개를 나란히 놓고 보니 세 가지 결이 반복됐다.

첫째, 만들고 싶은 것은 대개 유지비·동기 필터에서 막혔다. 기술적으로 재밌는 건 보통 비싸거나, 막상 내가 안 쓰는 것이었다. 흥미와 지속은 다른 곡선이다.

둘째, 돈이 보이는 것은 대개 시장·능력 필터에서 막혔다. 수익이 명확한 시장엔 이미 강자가 있고, 그 강자를 이기려면 내가 못 만드는 기술이 필요했다.

셋째, 가장 위험한 건 5개 중 4개를 통과한 아이디어였다. 7번 프리랜서 견적 툴은 시장·능력·유지비·동기를 다 통과했는데 수익 경로 한 문장에서 막혔다. 거의 좋은 아이디어가 가장 오래 나를 붙잡았다 — 1년을 끌었던 6개 프로젝트가 다 그런 거의 좋은 것들이었다. 그래서 지금은 5개 전부 통과가 아니면 시작하지 않는다.

다음 계획

이 5개 필터도 완성형은 아니다. 통과시킨 1개가 시장에서 실패하면, 필터에 6번째 줄을 더해야 할 거다. 아마 유통 경로 — "어떻게 첫 100명에게 닿는가" — 가 빠져 있다는 게 다음에 드러날 약점일 것 같다.

다음 글에선 이 필터를 통과한 아이디어를 실제로 검증하는 72시간을 적으려 한다. 필터는 책상 위의 판단이고, 검증은 밖에 나가서 맞는 시간이다. 그 둘 사이의 거리를 아이디어 검증 72시간에서 이어 적겠다.

버린 10개는 노트에 그대로 둔다. 지우지 않는다. 왜 안 만들었는지가 적힌 줄들이, 다음 11번째 아이디어 앞에서 가장 빠른 거울이 되니까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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